Camille Pissarro, 1876
몽푸코 농장 - 설경
우리에게 미술의 역사란 보는 것, 그리고 그 보는 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 또한 그 표현이 과연 정확하게 사물이나 대상 그리고 그 이상의 추상적인 개념이나 비구상적 대상에 얼마나 닿아있느냐라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관심은 아직도 여전히 ‘대상과 닮은 그림’을 ‘잘 그린 그림’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며 미술품을 접할 기회가 적었던 탓도 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번 보고 척하니 알고 싶은 급한 성격 때문이다. 눈으로 보이는데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 할 수 없는 답답함이 관람객과 현대미술 사이에 거리를 두게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물을, 대상을, 자연을 보는 것과 같다.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변화를 요구받는, 혁신과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구태의연한 르네상스시대의 그림이나 고전주의 양식의 그림을 보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유행 따라 옷도 갈아입는 사람들이 그림을 보는 방식에서는 고집불통인 셈이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이런 고집을 확실하게 확인하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바로 이런 이유에서 피사로는 우리가 아는 인상파를 보다 정확하게 알려주는 스승이자 인상파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전원풍경을 주로 그렸던 바르비종파와 인상주의를 잇는 가교이자 ‘인상주의의 장로’이다.
그는 인상파전에 한 번도 빠짐없이 출품 할 만큼 충실한 인상파 화가였지만 작품만 놓고 본다면 인상주의와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는 감각적으로 자연에서 받은 인상을 중요시 하는 인상주의자였지만 이러한 것들의 난잡하고 어수선한 인상들을 제어하고 정리하기 위해 사색과 정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야외에 나가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선호했지만 완성은 항상 아틀리에에 돌아와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그의 이러한 회화관은 다른 인상주의자들의 그것과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그가 살았던 시대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자연에서 받은 인상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화면에 담아냄으로서 인상주의자인 동시에 사링주의자로 일생을 살았다는 점이다.
그는 작품에서 주는 질박하고 투박한 전원풍경과는 달리 다소 급진적인 정치성향과 무정부 주의를 신봉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보기전에 그의 작업에 내적인 일관성을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피사로의 시대는 미술이란 단순하게 아름다움을 위해서 또는 벽면을 장식할 목적으로 그려지던 시대와는 거리가 먼 시대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