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 in Arcadia ego
Nicolas Poussin, 1637–1638
oil on canvas
185 × 121 cm, 72.8 × 47.6 in
Musée du Louvre





이 작품의 원제는 '아르카디아에도 내가 있다(Et in Arcadia ego)'이다.

아르카디아는 고대 예술가들이 그리는 '천국'으로 그들의 이상향을 대표하는 지역을 뜻 한다. 사실 아르카디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어디즈음에 위치하고 있는 실제 지명 이름이나 땅이 척박하여 그들이 그리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취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여하튼 베르길리우스나 오비디우스에 의해 천국으로 그려진 아르카디아는 풍요의 땅으로 그 이미지가 자리잡게 되었으며 특히 니콜라 푸생은 아르카디아를 그림의 주제로 자주 삼게 되었다.

'아카데믹한' 거장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프랑스의 화가 니콜라 푸생(1594-1665)이었다. 그는 로마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거기서 살며 작품을 제작했다. 푸생은 정열적으로 고전 시대의 조각상들을 연구했는데,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통해 순수하고 장엄했던 고대 도시들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의 작품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는 이러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서 생겨난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이 그림은 조용하고 햇빛으로 가득찬 남국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잘생긴 청년들과 아름답고 품위 있는 젊은 부인이 돌로 만든 큰 무덤 주위에 모여 있다. 나뭇잎으로 관(冠)을 엮어 머리에 쓰고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젊은이들은 양치기들인 것 같다. 그들 중 한 명이 꿇고 앉아서 무덤에 새겨진 명문을 해독하려고 하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명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름다운 양치기 여자를 돌아보고 있다. 그 여자는 맞은편에 있는 남자 목동과 같이 우수에 찬 표정으로 조용히 서 있다. 명문에는 라틴어로 다음과 같이 써 있다.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ET IN ARCADIA EGO)". 나(Ego), 즉 죽음은 목가적인 이상향인 아르카디아에도 의연히 군림한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무덤을 둘러싸고 묘비명을 읽고 있는 이 인물들의 두려움과 명상의 경의적인 몸짓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인물들이 서로 반향하여 이루어내는 움직임의 아름다움은 더욱 감탄할 만하다. 전체 구도는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그 단순함은 심오한 미술적인 지식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한 지식만이 죽음의 공포가 말끔히 가신 조용한 휴식의 이러한 회고적인 정경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이 작품은 1627년에 푸생이 그린 '아르카디아의 목자들'이다.
2편에 비해 유명세는 덜하지만 같은 주제를 10여년 전에 그린 모습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Posted by 데일.